그는 역사가 되었다. 전태일을 알아보자
반갑습니다. 오늘은 대한민국의 노동자이자 노동운동가.
대한민국의 노동자들을 위해 몸을 스스로 불사른 전태일을 알아보겠습니다.
전태일. 누구인가?
이 청년이 전태일입니다. 평화시장의 봉제 공장에서 일을 하던 청년입니다.
재단사로 일하며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때 그는 열악한 현실을 알리고자 정부와 기업들에게 근로기준법을 준수할 것을 요구하다,
시위현장에서 분신자살하여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평화시장?
청계천 지역에 밀집한 의류 도매시장이죠, 한국전쟁 이후의 실향민들이 생계를 이어나갔던 시장입니다.
그러니 당연히 무허가 건물과 노점이 즐비했고요, 실향들 중 많은 이들이 실향민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평화 통일의 염원을 담아 상가의 이름을 평화시장으로 지었습니다.
전태일의 삶
그는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지만 다정다감한 성격이었고,
불의에도 무릎을 꿇지 않는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밥을 못 먹는 것은 일상이었다고 합니다.
결국 다니던 초등학교마저 중퇴하고 재단사 일을 하게 되죠,
이때, 같은 공장에서 일하는 여공 한명이 기침을 하다 각혈(피를 뱉음)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래서 그는 병원에 알리려 했지만, 여공은 병 때문에 해고될까 봐 알리지 말라고 애원합니다.
이가 안쓰러웠던 그는 없는 돈으로 밥을 먹었다고 거짓말을 치며 여공들에게 밥을 먹이기도 했습니다.
이때 노동자들은 넘쳐나던, 바꿔말하자면 언제든지 대체가 가능하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전태일은 이런 노동 현실을 직시하고, 이 현실의 타파와 개선을 위한 길에 관심을 가집니다.
그러던 중, 그는 근로기준법이라는 노동 조건에 대한 법을 알게 되어 내용을 독학하려 했으나,
국한문(한자와 한글이 섞여있음) 인 내용 때문에 한탄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안그래도 없는 돈을 쥐어짜가며 해설서를 사서 어려운 법률 용어를 하나하나 해석해 가며 읽기도 하고,
같은 동네에 살던 광식이 아저씨라는 나이 든 대학생에게 용어의 뜻을 묻기도 했습니다.
해설서 한 페이지를 읽는 데 하루가 꼬박 새운 적도 있다고 합니다.
대단한 열정이지 않나요?
결국 그는, 법과 현실의 괴리를 찾아냅니다.
평화시장에서 '바보회' (자조적인 의미죠, 법이 있는데도 개같이 일하던 자신들을 냉소하고 있는 슬픈 이름입니다.)
라는 단체를 창립해서 근로 조건을 개선하고자 노력합니다. 하지만..
공장주는 화만 냈다
결국, 그는 공장주에게 밉보여 해고를 당하고 맙니다. 그렇기에 한동안 막노동을 하며 지냈다고 합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난 후, 다시 평화시장의 재단사로 돌아옵니다. '삼동친목회'를 조직하여
설문조사를 하고 노동청에 제출하고, 이는 경향신문이라는 신문에 실려 주목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사업주들과 협의를 벌이기도 했으나 무위로 돌아갔습니다.
사업주들은 감사가 끝났다고 전태일 일행을 빨갱이로 대한 답변이나 했으니 말이죠,
이때 전태일은 자신이 얼마나 무기력해 보였을까요,. 결국 이뤄낸 것이 없으니..
이것도 안돼, 저것도 안돼, 결국 스스로 불나방이 되어 자유로 뛰어드는 수밖에,..
화난 전태일 일행은, 있으나마나한 법 앞에서 환멸을 느끼고 청계천 앞에서
그저 형식에 불과한 근로기준법 화형식을 계획합니다.
하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공장주와 경찰이 고용한 패거리는 이 작은 시위조차 짓밟아버립니다.
그리고 전태일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위해, 자신의 몸에 휘발유를 끼얹고, 법전과 자신을 불태우면서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노동자들을 혹사하지 말라!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
라고 외치면서 쓰러집니다.
돈이 없으니 죽어야지?
이후 그는 국립의료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전신 3도 중화상,
환자가 돈이 없어 근로 감독관에게 보증을 받아야 하지만, 그는 보증을 거부했습니다.
그는 그렇게 2일동안 굶은 상태로, 배가 고프다는 유언을 하고 죽게 됩니다.
정말로 노동 시간이 많았는가?
전태일이 있던 평화시장의 노동시간은 일 16시간, 한달에 두 번 휴식, 돌아버리겠다.
노동환경이 한국보다 열악한 중국도 996문화라고 아침 9시 출근, 밤 9시 퇴근, 주 6일 근무로 한 달에 3번은 쉬고,
1920년, 엄청난 자유방임주의(국가가 기업이나 경제를 방임함) 에 일하던 미국 철강 노동자들도 일 12시간 근무인데,
이때의 공장주들은 하루 14~16시간 일을 시키고 줄여달라는 이에게는 해고하고,
마치 기계의 부품처럼 추가로 노동자를 모집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정말 인간을 인간으로 보지 않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 만큼 엄청난 업무량이군요,
이 정도면 그냥 노예입니다.
왜 그가 위인인가?
보통 빈민들은, 인간이지만 인간다운 취급을 받지 못합니다.
그러니 범죄율도 높고, 인간성을 지키는 것이 점점 힘들어지죠,
하지만 그는 끝까지 인간성을 지키며 노동자들이 물건 취급을 받는 것을 가만 두지 않았습니다.
그가 27세때 썼던 일기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을 물질화하는 시대
인간의 개성과 참 인간적 본능의 충족을 무시당하고
희망의 가지를 잘린 채, 존재하기 위한 대가로
물질적 가치로 전락한 인간상(人間像)을 증오한다
이 글처럼 그는 물건처럼 다루어지는 노동자들에게는 다정다감함을 보이며
그들의 처우를 개선하기 위해 대통령에게도 편지를 쓰고, (닿지 않았지만)
할 수 있는 최대의 활동마저 힘없이 밟히자, 스스로 그들을 위해 희생한,
정말로 만화 주인공 같은 삶을 살았던, 위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여담
이번 글을 쓰면서, 전태일이라는 사람은 알고 있었지만, 그가 분신자살 한 것도 알겠지만,
저는 학습만화로 보아서 과장된 표현이 첨가되었겠지,. 하고 있었지만,
노동법을 기만한 정말로 심각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엄청난 노력을 했던 그는 기억될 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그의 일기장 중 그를 잘 나타내는 글귀가 있어 가지고 와보았습니다. 이만 줄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나는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감정에는 약한 편입니다
조금만 불쌍한 사람을 보아도 마음이 언짢아
그날 기분은 우울한 편입니다
내 자신이 너무 그러한 환경을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